늙은 비의 노래
마종기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평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사방의 시야를 막고
헐벗고 젖은 속세의 말 두 마리 서서
열리지 않는 입 맞춘 채 함께 잠들려 하네.
눈치 빠른 새들은 몇 시쯤 기절에서 깨어나
시간이 지나가버린 곳으로 날아갈 것인가.
내일도 모레도 없고 늙은 비의 어깨만 보이네.
세월이 화살 되어 지나갈 때 물었어야지.
빗속에 혼자 남은 내 절망이 힘들어할 때
두꺼운 밤은 내 풋잠을 진정시켜주었고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편안해졌다.
나중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안개가 된 늙은 비가 어깨 두드려주었지만
아, 오늘 다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빗속에 섞여 내리는 당신의 지극한 눈빛.
아동문학가 마해송씨의 장남인 마종기 시인은 일찌기 도미해서 의사가 된 사람이다. 이민 초기에는 여러가지로 힘이들어서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2002년부터는 모교인 연세대 의과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려고 봄, 가을을 한국에서 지내고 있으니 그가 그리움에 겨워 쏟아내던 시들이 시인에게 답례를 하나보다. 어두워서 시를 쓰고 그 시가 등불이 되었다는 그의 시들은 또한 사는 것이 어려운 독자들의 어깨를 두드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