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창문에 도로 위의 가로등 불빛들이 금빛 구슬처럼 따뜻하게 반짝인다. 창밖을 보며 심호흡을 하는 나의 실루엣이 창문에 비친다. 자꾸 눈을 지그시 얼굴을 지그시 매만지는 건 눈물을 수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 창 너머로 내 여린 몸이 오늘따라 더 조그맣게 보인다.
공항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려 캐리어들을 끌고 안쪽으로 멀어진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는 늘어선 벤치 중 거의 끝에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앉곤 눈을 감는다. 공항에 오기 전부터 공항에 오기 싫어지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공항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공항은 늘 가슴이 시리고 마음이 서러워진다. 그곳에서 맞는 이별은 천 개의 가시가 박히는 통증보다 더 아프다. 그곳에서 맞는 이별은 송곳에 깊이 찔리는 고통보다 더 아프다.
모두가 반가이 만나 서로를 안고 웃을 때 나만 덩그러니 한자리에 남는 슬픔이 참 외롭다.
공항에서의 헤어짐은 나 홀로 세상에 버려지는 것 같아 차마 하기 싫은 일이다. 공항에서의 헤어짐은 그렇게 최대한 끝까지 멀리 밀어내고 싶은 시간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오고야 마는 이별의 순간을 알기에 공항 가는 길엔 함부로 설렐 수 없다. 기쁨과 슬픔의 지상 교차로가 공항이다. 공항에서의 이별은 삶 같기도 하고 죽음 같기도 한 그 사이 어디쯤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죽어야 하는 마치 장례식 같다.’
공항에서의 이별에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아직도 그날의 두려움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전화기를 꺼내 한동안 고민한다. 전화걸기 버튼을 눌렀다 곧 끊어버린다. 사진 찍기를 시도하다 발갛게 보이는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을 접는다. 전화를 걸까 사진을 찍어 보낼까 고민하고 망설이며 주윌 둘러본다. 사람들은 벌써 비행기를 탄 듯 구름 위에 앉은 표정이다. 들뜨게도 하고 설레게도 하는 공항의 위력에 이미 넘어간 얼굴처럼 보인다. 수 십 명 사람들의 발걸음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공항 안을 오가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다 준호에게 사진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눈도 약간 더 크고 동그랗게 떠 보고 다문 입술은 아주 살짝 옆으로 위로 올려본다. 기쁜 만남과 슬픈 이별과 마주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눈물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캔디처럼 외롭지만 슬프지만 겉으로는 다가올 여행을 기대하는 자처럼 위장할 수 있다. 만나고 싶지 않거나 만날 준비가 늘 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기에 떠나는 여행엔 그런 비행을 앞두고는 웃음기가 속 빠지긴 하지만.
해묵어 곪아 터진 아픔은 더 깊은 상처이기에 스치기조차 겁나는 법이다. 지금 내 속이 딱 그 짝이다. 막상 간대도 막상 만나면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빤한 몇 십 시간 뒤가 그려진다. 기대나 설렘은 반푼어치도 없는 한국행이다. 하지만 겉으론 안 그런 척 두 얼굴을 해도 되는 공항이라 참 다행이다 싶다. 속이야 어떻든지 가짜로라도 슬픔 따윌 감출 수 있는 공항에서의 혼자인 시간이 괜찮게 느껴진다. 공항이 좋기도 하고 아니 좋기도 하니 지금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게 확실하다. 한국에 가고 싶다 가기 싫다 두 맘이 싸우는 중이다. 장항아리 뚜껑을 열어 얼마나 곰삭았나 보자 하다 금방 또 아니다 더 기다렸다 열면 열고 말면 말자는 심정이다. 상처일랑 굳이 쑤셔대면 뭐 할까 싶은 게 마흔 지나 거의 가운델 통과할 나이가 되니 세상사가 부질없어 더 그런가 보다.
캔디처럼 슬퍼도 안 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빨간 머리 앤처럼 혼자가 좋다는 건 더욱 아니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우는 사람들의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을 느끼는 공항에서의 시간이 좋을 뿐이다. 반가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또는 꿈꾸는 여행지에 닿기 위해 벌써부터 행복해 보이는 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도 티 없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정직한 대로 살고 싶다.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처럼 이상하지 않은 나이고 싶다. 눈치라는 마음의 티를 안 갖고 있어도 되는 자유로운 나,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나, 공항 사람들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눈이 부러움으로 반짝이고 나의 입꼬리가 가벼움으로 올라간다. 공항 사람들을 보며 들뜨기도 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찰칵. 찰칵. 찰칵.
두 눈의 가운데 동그라미가 일 밀리미터쯤이나 차이가 날까 말까 언뜻 보면 다 똑같아 보이는 사진 세 장을 찍었다. 어떤 사진을 전송할까 고민 중인 나, 이때 안내방송이 흐른다.
[오전 8시 10분 밴쿠버 공항으로 가는 웨스트젯 항공기에 탑승하시는 승객께서는 지금 곧 18번 게이트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버스 지하철 기차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이 가끔은 고마울 때가 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진 중 하나를 골라 전송해야 할 때 재촉하는 안내방송이 반갑다. 고민 없이 바로 모두를 보내거나 내 눈에 예쁘거나 멋진 사진을 느낌대로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공항 안내방송 덕분에 사진 세 장을 빛의 속도로 준호에게 보낸다.
밴쿠버행 비행기 안에서 서울 이모와 통화한 기억을 떠올리는데 그 위로 또 한 겹의 기억 이불이 덮인다.
‘가지 마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나랑 여기서 같이 살아요! 갈 거면 나도 데리고 가세요! 엄마!’
일 분도 안 되어 눈물이 흐른다.
민소하
국어국문학 전공 후 등단, 작사가 구성작가 신문기자 등 글과 함께 살았지만 결혼으로 경단녀!
몬트리올 이주 13년, 웨스트 아일랜드 거주 11년차. 네 아이들과 씨름하는 육아맘이자 초보 블로거입니다.
sohami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