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이라는 가장자리
김중일
눈동자는 일년간 내린 눈물에 다 잠겼지만, 눈썹은 여전히 성긴 이엉처럼 눈동자 위에 얹혀있다. 집 너머의 모래 너머의 파도 너머의 뒤집힌 봄,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바람의 눈썹이다.바람은 지구의 눈썹이다. 못 잊을 기억은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까지 다 밀려온다. 계속 밀려온다. 숨 없이 밀려온다. 얼굴 위로 밀려온다. 눈썹은 감정의 너울이 가 닿을 수 있는 끝, 일렁이는 눈썹은 표정의 끝으로 밀려간다.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다. 매 순간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울음이 울컥 모두 눈썹으로 밀려간다. 눈썹을 가리는 밤. 세상에 비도 오는데, 눈썹도 없는 생물들을 생각하는 밤. 얼마나 뜬 눈으로 있으면 눈썹이 다 지워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밤. 온몸에 주운 눈썹을 댄 편백나무가 바람을 뒤흔든다. 나무에 기대 앉아 다같이 뜬 눈으로 눈썹을만지는 시간이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과 다르게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인 얼굴에, 얼굴의 변두리에 난다. 눈썹은 사계절 모두의 얼굴에 떠 있는 구름이다. 작은 영혼의 구름이다. 비구름처럼 낀 눈썹 아래, 새까만 비웅덩이처럼 고인 눈동자 속에, 고인의 눈동자로부터 되돌아 나가는 길은 이미 다 잠겼다. 저기 저 멀리 고인의 눈썹이 누가 훅 분 홀씨처럼 바람타고 날아가는 게 보이는가? 심해어처럼 더 깊은 해저로 잠수해 들어가는 게 보이는가? 미안하다. 안되겠다. 먼 길 간 눈썹을 다시 붙들어 올 수 없다. 얼굴로 다시 데려와 앉힐 수 없다. 짝 잃은 눈썹한 짝처럼 방 가장자리에 모로 누워 뒤척이는 사람, 방 한가운데가 미망의 동공처럼 검고 깊다. 눈물이 다 떨어지고 나자 눈썹이 한 올 한 올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가장자리에는 누가 심은 편백나무 한 그루.
그 위에 앉아 가만히 눈시울을 핥는 별이 한 마리.
시인이 그랬다. 시가 너무 밝아서 풍경과 사물이 지워진다고… 시인은 눈썹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과 다시 데려올 수 없는 경계를 지운다. 그 경계에 눈썹을 둔다. 가만히 눈시울을 핥아주기바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