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김정란
네 망설임이 먼 강물소리처럼 건네왔다
네 참음도
네가 겸손하게
삶의 번잡함 쪽으로 돌아서서 모르는 체하는 그리움도
가을바람 불고 석양녘 천사들이 네 이마에
가만히 올려놓고 가는 투명한 오렌지빛
그림자도
그 그림자를 슬프게 고개 숙이고
뒤돌아서서 만져보는 네 쓸쓸한 뒷모습도
밤새
네 방 창가에 내 방 창가에
내리는, 내리는, 차갑고 투명한 비도
내가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한번, 내 이름으로,
너는 늘 그렇게 내게 있다
세계의 끝에서 서성이는
아득히 미처 다 마치지 못한 말로
네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쓴다, 내 가슴 빈터에
세계가 기웃, 들어가보고 제 갈 길로가는
작은, 후미진 구석
그곳에서 기다림을 완성하려고
지금, 여기에서, 네 망설임을, 침묵을, 거기에 심는다,
한번 더, 네 이름으로,
언제든 온전히 말을 거두리라
너의 이름으로, 네가 된 나의 이름으로
김정란 시인도 이제 보편적인 언어로 시를 쓰는 구나… 실밥을 질질 끌고하는 여자가 나오는 시로 소월시 문학상을 받고나서 마음이 변했나보이. 그건 배반일까? 이 시인도 너와 내가 함께 하나가 되고자하는 그리움으로 그의 세계를 완성하려는 걸까. 후미진 구석, 시인의 빈터에 누구의 이름이 거두어질까 궁금해서 이 시를 읽는다 혹시 내가 그리운 사람의 이름이 아닐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