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하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젊은 노동자가 가난해서 사랑을 외면해야 했을 때, 그 사랑은 그에게 사치였을까?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에 눈 뜨는 한 가난한 노동자의 아침에 그가 버려야 했던 소중한 것들을 밟고 일어섰던 사회는 과연 건강했을까… 생각해 보게하는 이 시를 쓴 신경림 시인은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듯이 그가 몸 담고 있는 세상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