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의 사랑

등 뒤의 사랑

 

오인태

 

앞만 보며 걸어왔다.

걷다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등을 돌리자

저만치 걸어가는 사람의 하얀 등이

보였다. 아, 그는 내 등뒤에서

얼마나 많은 날을 흐느껴

울었던 것일까. 그 수척한 등줄기에

상수리나무였는지 혹은 자작나무였는지,

잎들의 그림자가 눈물자국처럼 얼룩졌다.

내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랑을 좇아

끝도 보이지 않는 숲길을 앞만 보며

걸어올 때, 이따금 머리 위를 서늘하게

덮어 와서 내가 좇던 사랑의 환영으로

어른거렸던 그 어두운 그림자는

그의 슬픔의 그늘이었을까. 때때로

발목을 적셔와서 걸음을 무겁게 하던

그것은 그의 눈물이었을까

그럴 때마다 모든 숲이

파르르 떨며 흐느끼던 그것은

무너지는 오열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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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던 감정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 지나온 자취를 살피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보인다는 시인의 시절은 40대라고 했다. 슬픔은 슬픔대로 오열은 오열대로 등 뒤의 사랑에게서 떠날 수 없는 까닭이다. 오인태 시인은 1991년 ‘녹두꽃’ 3집에 시를 발표하면 등단했고 시집으로 ‘그곳인들 바람이 불지 않겠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