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살지만 한국 뉴스도 인터넷을 통해 매일 보는 편이다. 며칠 전 관련 소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1973년 3월 30일에 처음 시행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매년 5월 1일을 그 날로 지정해 시행하고 있다. 근로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각국의 근로자들이 연대의식을 다지는 날, 바로 한국의 근로자의 날이다.
한국에서 얼마 전 개정한 법령을 보면 정부는 공휴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대체공휴일로 지정해 운영할 수 있다. 공휴일이 토요일·일요일 또는 다른 공휴일과 겹치면 그다음 첫 번째 평일이 대체공휴일이 된다.
성탄절과 부처님 오신 날에 대체공휴일이 적용되면서 5월에는 황금연휴가 세 차례나 된다고 한다. 물론 캐나다에 살고 있으니 우리들과는 무관하지만, 봄날의 절정인 5월에 한국의 곳곳은 여행객들로 붐비겠구나 생각하니 멀리서나마 마음이 동한다. 우리에겐 빅토리아 데이가 있지만 사실 짧더라도 한국에서의 여행이 훨씬 더 맛나고 즐겁잖은가.
한편 근로자의 날이라고 모두가 다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취업기관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출근을 한다고 응답했단다. 근로자의 날 분신한 노조 간부가 치료 도중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17년 만에 노사화합 한마당을 개최했다는 훈훈한 소식도 있다. 그런 가운데 캐나다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사상 최초 대규모 파업 소식에 며칠 동안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 이민국의 행정, 세금, 보험, 교통 등 대부분의 공공서비스 분야에 유례없던 장기 파업이었다. 세금신고와 환급 업무를 담당하는 국세청의 파업이 오래 지속되어 걱정했는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와 국세청 근로자 노조, 양측이 협의점을 찾고 파업을 종료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결혼 후 캐나다에 와서는 13년 가까이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나와는 먼 얘기인 것 같지만 남편은 2주마다 급여를 받는 사람이라 지나간 근로자의 날이 남일 같지 않다. 더욱이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연방 공무원 노조의 파업 사태로 우리도 직간접적으로 불편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의 근로자의 날인 이달 1일 캐나다 연방 공공노조의 파업이 대부분 철회되었다니 다행이다.
캐나다 국세청 CRA 노조는 협상 타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공공서비스연맹PSAC 노조는 파업을 진행하면서 계약협상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파업에는 재무부 산하 부서 종사자들이 대거 참여해 공공행정업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세청 직원들의 파업이 세금신고 기간에 발생해 세금환급 지연과 여권신청 및 갱신도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 남편은 별도의 노조 산하에서 근무하고 있어 이번 파업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공공근로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연방정부 공무원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파업 사태를 더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남편이 일하는 분야에서는 파업 여파가 없는지도 살피며 뉴스를 점검하곤 했다.
캐나다에 살면서 공무원들의 파업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장 영향을 받는 서비스들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미국 국경을 통과하거나 또는 항공편을 통해 여행을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여권이다. 여권 관련 서비스만 해도 이번 파업과 연관이 있었다. 캐나다고용사회개발부ESDC는 여권서비스 수속 지연, 새 여권 신청과 일부 여권지원 서비스 부분적 또는 전면중단으로 불편을 겪었다. 서비스캐나다센터에서는 실업급여, SIN, 연금, 노령연금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제공했다. 이민과 난민, 그리고 캐나다 시민권을 담당하는 이민국 업무는 이민 및 비자 수속에 차질을 빚었다. 캐나다교통국도 분쟁 해결과 전화 접수가 지연되었고 조금 생소한 캐나다글로벌어페어스도 필수 서비스만 제공되었다고 한다. 항만청은 곡물수출검사관 등 관련자 대부분이 파업에 동참하여 곡물수출절차가 지체되었다. 캐나다국세청CRA는 소득신고와 수당환급 수속 지연이 예상되었으나 4일 극적 타결로 파업을 종료했다.
우리 가족도 이번 달에 미국 뉴욕 육로 여행을 계획해 여권갱신 문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즉답을 주기도 했고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걸로 최종적인 결과를 재차 확인했지만 이번 파업에 영향을 받은 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파업 기간의 불편함을 우리가 얼마나 피부로 느꼈는지는 모른다. 또한 각자 처한 삶의 자리와 상황과 환경에 따라 파업의 여파를 실감하는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감사하게도 취업비자, 학생비자, 기타 비자 신청 절차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비자심사와LMIA발급과 생체인식정보 수집 업무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니 비자와 관련해 누군가는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애타는 마음으로 비자 승인을 기다렸거나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바람대로 지난 4일 국세청까지 파업을 마치며 대다수의 공공분야 근로자들이 업무 현장으로 복귀했다. 공무수행을 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이민자로서 속히 파업이 종료되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남편의 직장은 파업에 불참했지만 공공근로자로서 이번 파업을 이해하는 분위기여서 은근한 기싸움도 있었다. “비자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이민 희망 대기자들에겐 하루가 어쩌면 백일 같을 텐데 어서 파업을 끝내야지!”라고 말하며 남편의 저녁식사 접시에 채소를 듬뿍 올려주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편식하듯 채소 먹기를 싫어하는 남편의 평소 식습관에 대한 작은 복수랄까. 공무원 노조의 파업이 남편 탓도 아니고 파업엔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뭔지 모를 얄미움 같은 게 살짝 올라왔다. 속으로 ‘당신은 캐나다인 공무원이지만 나는 한국인 가정주부다! 한국인이 행복하고 편안한 캐나다였으면 좋겠다! 몸에 좋은 채소나 더 먹고 건강해져서, 이민자에게도 좋은 캐나다 만들기에 당신이 앞장서시오!’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그저 급여생활자인 남편의 힘으로 갑자기 캐나다가 더 좋은 국가가 되진 않는다. 다만 캐나다인과 한국인,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합법적인 이민자로 이곳에 왔을 때 함께 상생하며 잘 사는 나라가 캐나다라면 참 좋겠다.
그나저나 해도 해도 끝없고 표시도 안 나는 살림에 또 너무나 표시가 잘 나는 육아만 하고 있는 나는 언제 파업할까. 아내 파업이나 엄마 파업 아니면 대대적인 주부 파업, 단 한 번이라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객관적으로는 엉망진창이라 부끄러운 우리 집 살림살이가 초토화될 것 같아 차마 파업은 못 하겠다. 가정주부라는 이 무급 근로자 자리를 평생 지켜야 한다. 그래도 내가 우리 집의 경제부총리 아닌가. 내 돈은 내 돈, 남편 돈도 내 돈이니 그만하면 최고의 지위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엄마로서 휴무는 있겠지만 파업만은 하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비록 우격다짐일지라도.
민소하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2011년 몬트리올로 이주, 네 아이들을 키우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