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

한 낮

박성현

버스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멈췄다. 된장국 냄새가 솔깃하다. 골목을 돌고, 다시 골목 끝으로 가면, 저편에 집 한 채 기우뚱 있다. 영산홍이 피고, 떨어졌다가 다시 피는 5월에도 그 집은 비스듬히 서 있다.

녹슨 파란색 철제 대문을 지나면 텃밭 같은 마당에 큰 개 한 마리 햇볕을 쬐고 있다. 몇몇 노송이 한 세월 돌아가면서 입고 다녔던 장삼처럼 곱게 펴져 있다. 시멘트 담 가까이 돋아난 풀잎이 흔들린다. 허기진 마음이 풀잎을 따라 비닥으로 잠긴다. 풍경 소리가 난 듯했으나 바람이 항아리를 울리고 간 소리다. 항아리에는 된장이 익어간다. 대청마루에 모시적삼을 입은 노부부가 나란히 세모잠을 잔다. 수백 년 전의 기억은 모조리 잊히지만 한낮에는 늘 되살아났다.

우체부 김 씨가 등기소포를 가지고 초인종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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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경은 오래된 한옥이 시간을 켜켜히 덮고 있는 모습이다.  시인은 지금 어디쯤 있는가?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는 주변의 공간에서 시간은 수백 년 먼 길을 갔다가 시인이 있는 곳에 돌아온다. 우체부 김 씨가 초인종을 누르기 전까지, 한 낮에 스치는 풍경은 그저 꿈일까…

박성현 시인은 2009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았고 시집으로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