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 읽는 소설 8 – 어린이는 누구나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큰 외숙모가 점심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귓등으로 들린다. 엄마가 원재 삼촌네서 일어날 때에 맞춰 옥상에서 내려갈 참이다. 솔직히 이렇게 멀찍이서 보초만 서다 해 떨어지는 게 더 애타고 조바심 난다. 시간이 어서 지나가야 한다. 엄마가 떠나고 또다시 혼자 남았다는 슬픈 생각이 그럼 아주 빨리 사라질 테니 말이다. 다음 명절이 언제인지 엄마가 몇 밤 자면 오는지 세어보는 잠시 동안이 그 슬픔을 지워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엄마가 오시는 날은 하루가 너무 빨리 가니 혼잣말이 나온다.

‘나랑은 같이 하는 것도 없고 서로 말도 안 하고 옆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엄마라고 불러보지도 못하는데 엄마가 오는 하루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거죠? 엄마. 오늘 가면 또 금방 보고 싶어지겠죠. 엄마. 그래도 다음 명절 때까지 잘 기다리고 있을게요. 엄마”

본디 엄마 생각 가족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 생각만 할 수 있다. 엄마에 대한 궁금증은 늘 끝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가족이다.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은 가족이다. 그래서 엄마와 가족 생각만 하면 왜 우리가 같이 살지 않는 가족인지도 언제나 궁금하긴 하다. 비록 그것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일급비밀 같은 걸지라도. 하기는 물어본다 해도 어른들은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현아 너도 크면 알 거다.”라고.

어린이는 어린 나이에 궁금한 질문이 있고 어린이는 어린 나이에 알고 싶은 것이 있다. 어른들은 정말 어린이를 모른다. 아무리 어린이라도 자기가 왜 엄마랑 살지 못하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들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로 하여금 나 때문에 엄마가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이다. 어린이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평생에 걸쳐 서서히 숨을 끊어놓는 가장 잔인한 고문이다.

여섯 살 밖에 안 된 어린이라 해도 나의 삶은 너무나 무겁고 아프고 고통스럽다. 어른들이 나에게 한 번만 진실을 말해 주면 좋을 텐데. 아프더라도 훨씬 더 빨리 죄의식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자유로이 날아오르는 나비가 될 것을. 나비가 되어 엄말 내려다볼 수 있는 하늘로 날아가는 상상은 그렇게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나만의 꿈이다.

“명란아 다음에 또 보자. 예쁜 아기도 잘 키우고. 그럼 전 이만 내려갈게요. 점심 맛있게 잡수세요! 우리도 이따 선산에 갈 건데 거기서 뵐 수 있으면 또 봬요!”

백 보는 멀리 있는 것 같은데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나의 신경도 온통 엄마에게 가 있던 모양이다. 엄마가 작은 댁에서 나오신다. 비록 가까이는 못 안더라도 엄마랑 한 상에서 밥은 먹고 싶다. 작은댁 앞에 난 쪽 길로 엄마가 내려가는 걸 본 나도 서둘러 옥상 계단을 통해 집으로 내려간다.

엄마는 외할머니 집에 오셔도 지구대 요원처럼 먼저 마을 순찰부터 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텐데도 무심히 다른 집부터 돈다. 아침 열시쯤 외할머니 집에 오셨지만 아까운 시간을 길 위에서 다른 집에서 허투루 다 보내고 이제야 돌아왔다.

나도 정말 이상하다. 엄마가 없을 때는 한 시도 엄마 생각을 안 하는 적이 없다.

‘엄마 오는 날이 며칠 남았는지 세어보고, 엄마 가는 시간이 몇 시간 남았는지 따져보고, 엄마 집은 어디일까, 엄마는 아침에 무슨 반찬을 먹을까, 엄마는 어떤 색깔을 좋아할까, 엄마는 몇 시에 잠을 잘까… 이렇게 온통 엄마 생각뿐인데 그런데 왜 엄마만 오면 물어보고 싶은 말도 보고 싶었다는 말도 다 어디로 쏙 사라져버리고 마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엄마가 집에 갈 시간이 한 세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궁금한 것들 투성이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도 나와 눈을 마주치거나 나를 보며 웃거나 내 옆에 앉거나 하지 않으니 다가갈 용기가 없다. 오늘도 이렇게 내게서 멀찌감치 앉아 다른 친척들과 이야기하다 집에 가실 것 같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나를 보러 온 것 같지가 않아 슬프다. 다른 가족들과의 실없는 농담 몇 마디 속에 엄마가 있고 나는 거기에 없다. 엄마의 눈 속에 외로운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 엄마만 기다린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흘린 눈물도 절대로 알 리가 없다.

엄마가 나를 버린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엄마가 나와 같이 살 수 없어서 키워줄 수 없어서 외할머니가 나를 키웠을 뿐 나를 버린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엄마가 오시는  날은 일 년에 단 며칠뿐이다. 만약 엄마도 나를 보고 싶어 했다면 일 년에 두세 번 밖에 없는 이런 날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서는 안 된다.

언제나 나는 그런 아이다. 화목한 가족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섞여 있는 천덕꾸러기 아이 말이다. 설령 그게 나라고 해도 오늘만은 엄마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무 말도 못 한다. 그러니 외할머니 집에 엄마가 오셔도 콱 막힌 나의 가슴은 뚫리질 않는다. 오히려  엄마만 다녀가면 나는 더 외롭고 더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도 나의 외로운 마음을 외면하시는 엄마라면 나는 버려진 아이가 맞다. 엄마의 가슴 어디에도 여섯 살 딸이 파고 들어가 얼굴을 비비고 마음을 뉠 자리는 없다. 엄마에게 일 년에 몇 번씩 내동댕이 쳐지는 이런 명절은 정말이지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오는 날이라도 이제는 다음 설 날도 또 다음 추석도 기대되지 않는다. 차라리 명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민소하
국어국문학 전공후 등단, 작사가 구성작가 신문기자 등 글과 함께 살다 몬트리올로 이주했어요.
웨스트 아일랜드 거주 11년 차, 네 아이들의 육아맘으로 틈내어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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