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 읽는 소설 4 – 딸은 추격자 엄마는 동네 한 바퀴

추석 날이라 잠시 외할머니 댁에 온 엄마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곗돈 탔다 바로 도둑 받은 날처럼 허망하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댁에 오셔도 집으로 바로 들어오질 않는다. 몇 날 며칠 이날만 손꼽아 기다린 나는 꿈에도 모르는지 다른 집부터 다 돌며 인사하곤 하신다. 그 누가 딸인 나만큼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온 동네방네 다니며 얼굴을 비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승희! 잘 지내셨죠?”

포도밭에서 일하던 큰댁 아주머니가 몸뻬를 고쳐 올리며 일어나 승희를 반겨준다.

“그래! 너 왔구나! 현아 엄마 왔구나! 잘 왔다. 현아 엄마!”

“추석이라 산소에라도 들를까 해서 겸사겸사 왔어요! 일하세요. 어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나의 마른버짐 핀 얼굴에도 살며시 웃음꽃이 핀다.

엄마는 내가 멀찍이 뒤따르는 것을 알 텐데도 가까이 오라고 부르거나 말도 붙이는 적이 없다. 엄마가 한 번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줄까 싶어서 도저히 그 언저리를 떠날 수가 없다. 엄마가 외할머니 집으로 갈 때까지 나도 마을 한 바퀴를 같이 돌 참이다.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이 기동이네라고 부르는 한씨 할아버지 집이다. 할머니는 순흥 안씨가 아니지만 이 마을에 들어와 산 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안 계시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를 꼭 기동이네라고 불렀다. 아마 할머니 아들 이름이 기동이라 그런 것 같다.

나무 대문이 반쯤 열려 있어 집 안마당이 훤히 보인다. 엄마가 헛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기동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저 왔어요. 승희! 추석이라 선산에도 갈 겸 해서 왔어요.”

엄마는 마을 어르신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맨날 아니 올 때마다 선산에 가려고 왔단다.

맨날 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명절에나 하루 다녀가면서도 엄마는 딸 보러 왔다고 허튼 말을 못 한다. 그냥 나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맘에 없는 소리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영 그러는 법이 없다. 마음에 없는 말이라 정말 못 하는지 어른인데도 부끄럼이 많아 그러는지 나는 엄마 속을 몰라 답답하다. 마음에는 있지만 차마 나한테 미안해서 그 말이 안 떨어지는 거라고 믿고 싶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조금 삐쳤는지 엄마한테 뾰로통한 마음을 먹었다 금세 도로 집어넣는다.

“아이고 왔구나! 현아 엄마 왔어! 잘 왔다. 들어와서 전이라도 좀 먹고 가라! 오랜만에 왔잖아!”

얼마 전에 새로 시집온 며느님과 전을 부치던 기동이네 할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아니요 괜찮아요! 작은 댁에도 가봐야 하고 광열이 아저씨네 쌍둥이네도 가봐야 해요. 저 너머 망태 할아버지네도 가야 되고요! 갈 데는 많은데 시간이 없어요! ”

엄마는 그렇게 작은 고갯마루 너머에 있는 망태 할아버지네도 들러 인사를 나눈다.

그전에 차에 가서 트렁크 안에 있던 고흥 명품 유자차 세트까지 챙겼다. 조금 멀리 돌아가는 길이 있지만 작은댁 복숭아 과수원을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로 향한다. 왜 망태 할아버지네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망태 할아버지네 집에 정말로 아이들이 겁내할 만한 그런 상상의 인물이 사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집은 내 친구 혜진이가 사는 집이기 때문에 잘 안다.

혜진이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신다. 내가 혜진이네 집에 놀러 올 때마다 혜진이 할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계셔서 늘 코가 빨가시다. 밝고 짙게 붉은 혜진이 할아버지의 코는 꼭 루돌프 사슴 코 같다. 농사일을 하셔서 얼굴은 까무잡잡하지만 코만은 항상 빨갛게 물들어 있다. 아마도 망태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는 혜진이 할아버지에게 차마 고주망태라고 할 수 없어서 붙은 별명 같다. 고주망태 할아버지보다는 망태 할아버지가 더 예의도 위엄도 있어 보이니 말이다.

오늘도 망태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계시다.

“하룻밤만 이틀 밤만 자고 왔다던 새아기 어찌하고 사는 고로 소식 한 번이 없는가”

“지새끼들 줄줄인데 내가 가면은 어쩌나 어디 사나 언제 오나 늙어 죽으면 오련가”

망태 할아버지가 술 취하면 부르는 노래다.

“안녕하세요! 망태 할아버지! 또 약주하셨어? 이제 건강도 생각하셔야죠. 우리 아저씨가 건강하셔야 손녀들도 잘 건사하죠. 약주 드시지 마시고 몸에 좋은 유자차 드시고 건강하셔요!”

망태 할아버지가 고개를 든 둥 만 둥 유자차 상자를 받아들다 눈을 치켜뜨고 엄마를 한 번 쏘아본다.

“자네 왔는가! 내가 속상해서 술 좀 했다네. 자네는 그래도 자식 보러도 오고 하늘 무서운 줄 알고 할 도리를 하는가. 아버지 엄마 보러 왔는가! 그리 왔다가 자네 새끼도 보고 가니 하늘이 좀 봐 주겠지! 승희 자네는 하늘이 조금 봐 줄 걸세! 승희 자네는 양심은 있는 어미요.”

망태 할아버지가 눈물이 조금 그렁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시더니 엄마 손을 잡는다.

그러고는  엄마 손등을 쓱쓱 자꾸 문지르다 투박한 당신 손으로 툭툭 치다 또 손등을 문지르다 몇 번을 하시고는 엄마 손을 놓으신다. 마치 ‘내가 네 마음을 다 안다’고 말씀하시는 듯 엄마를 바라보는 망태 할아버지의 눈빛이 영 낯설다. 그동안 자주 보던 고주망태  소리쟁이 같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내 기분도 좀 이상하다. 망태 할아버지가 울 엄마 마음을 정말 알아주는 것 같아 좋기도 하면서 혜진이가 처음으로 불쌍하다. 나보다 더 불쌍한 아이는 혜진이가 처음이다.

망태할아버지가 술 취해 부르는 노래며 엄마에게 하신 주정 같은 하소연이 다 혜진이 엄마 얘기다. 혜진이도 나처럼 엄마가 없다. 나는 엄마가 있지만 일 년에 몇 번만 보는 것이고 혜진이는 명절 때도 엄마가 없다. 혜진이가 아주 갓난 아기였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혜진이는 언니가 둘이나 있어 나처럼 집에 어린이가 혼자뿐이 아니다. 언니들이 둘 있는 건 정말 부럽다.

나처럼 엄마 없는 혜진이지만 언니들이 있으니 불쌍하기로 치면 내가 더 심하다. 나는 겨우 엄마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일 년에 몇 번 명절 때 딱 하루만 오신다. 자고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적어도 내가 엄마를 기억하기 시작한 나이에서부터는 엄마가 한 번도 외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진 않았다. 몇 시간 있다 가지만 나하고는 아는 채도 안 하고 눈길도 주지 않으니 내가 혜진이보다 더 불쌍한 어린이가 확실하다.

엄마가 있지만 엄마 같지 않은 엄마다. 아니면 내가 왜 엄마라고 부르기가 이렇게 겁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언제나 뒷모습만 보여주는 엄마가 어떤 때는 밉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엄마니까 엄마를 사랑한다. 아직까지 말로 한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다. 그냥 내 엄마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땅을 보며 걸어간다. 엄마와 아까보다는 더 많이 멀어져 있다. 머릿속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그만 엄마 걸음을 못 맞췄다. 조금 뛰어가며 엄마를 따라잡아 본다. 엄마 뒤에서 조금은 멀지만 갑자기 혼자 멀리는 못 가시게 살금살금 뒤따라간다.

민소하
국어국문학 전공후 등단, 작사가 구성작가 신문기자 등 글과 함께 살다 몬트리올로 이주했어요.
웨스트 아일랜드 거주 11년 차, 네 아이들의 육아맘으로 틈내어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