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 읽는 소설 1 –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캐나다 이방인 나의 이야기

파트 1 시작 – 외눈박이 어미 물고기

[띵동! 부재 중 전화 열 다섯 통]

이 주 전, 그 날은 내가 한 쪽 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날이면서 마음에도 커다란 바윗덩이가 얹힌 운수 불통한 날이다. 몸이 천근 만근 무겁고 찌뿌듯하다. 정신을 차려보려 창문 곁으로 가 서서는 한동안 말없이 흰 구름거품만 바라본다. 하늘만 보면 시큰시큰 눈에 찬바람이 새어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노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준호가 들어온다.

“여보 차 한 잔 마시고 원고 마감 해. 시간 되면 아이들 학교생활기록부도 봐 주고. 저녁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말고 일 봐.”

준호가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하늘멍 시간도 끝이다.

“어 그래 자기야 저녁 좀 부탁해. 오늘도 미안하고 고맙고 내 맘 알지?”

“그럼 자기 맘 다 알지. 미안하단 소리 마. 아이들 올 때 거의 다 됐어. 숙제는 내가 봐 줄게.”

준호가 어깨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나간다. 나는 문 뒤에 서서 몇 초쯤 입꼬리를 올리고 눈꼬리를 내려 미솔 머금는다.

“일하자 일. 마감하자 원고. 반갑게 안아주자 아이들. 그럭하게 어서 끝내자. 서두르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빠르게 타자를 친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나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한동안 타닥이던 키보드 소리가 멈춘다. 원고 마감을 끝내고 차를 한모금 마시며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들춰본다.

“읽기 쓰기 말하기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전체적으로 다 잘 했네. 고맙다. 우리 큰딸.”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며 다행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어디 보자… 너도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수학 잘 했어. 괜찮다. 이만하면 동생인데 잘 했어.”

둘째 딸의 생활기록부도 훑어보고는 살짝 웃으며 내려놓는다.

잠시 뒤 현관문 앞에 가방을 내려 놓자마자 말항아리부터 여는 딸들의 목소리가 방 안까지 들린다.

딸들에게 손부터 깨끗이 씻고 우유 마시고 숙제하라는 당부를 해 놓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컴퓨터를 켜려다 옆에 있던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가지런히 추려놓자 싶다.

에이포 종이 여러장을 포개어 책상 위에 탁탁 두드리다 짤막하고도 강렬한 비명을 지른다.

“악! 아! 내 눈! 내 눈동자! 내 눈!”

아이들 학교에서 보내 온 공문을 보던 중 당한 뜻밖의 사고다.

나의 스타카토 같은 굵직하면서도 짧은 비명소리에 준호와 아이들이 방안으로 달려온다.

준호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달래어 다시 숙제를 하도록 방으로 들여보낸다.

“여보 괜찮아?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눈을 다친거야? 어쩌다 그랬어? 눈 뜰 수 있겠어? 가만 있어봐, 우선 뜨거운 수건을 가져 올게. 눈 위에 잠시 올려 놔 보자. 여보 괜찮을거야. 걱정하지 마.”

준호는 부리나케 욕실로 가서 뜨거운 물에 흠뻑 적신 수건을 꽉 짜서 나에게 갖고 온다.

한겨울 얼음물벼락을 맞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든다. 잊고 있었지만 아내는 오른 쪽 눈의 시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왼쪽 눈으로만 자신을 보고 아이들을 보고 우리 식구를 볼 수 사람이다. 준호는 나를 꼭 감싸안아준다.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빛을 보곤 더 꽉 끌어안아주니 나의 심장이 비로소 잠잠해진다.

“여보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눈 다쳤지만 안 보이진 않을 거야. 볼 수 있을 테니 걱정마. 지금은 눈이 많이 부어 있어서 당신 눈이 잘 안 떠지는 거야. 괜찮을거야. 볼 수 있을거야. 울지마. 네 눈 내가 안 보이도록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정말 안  보이면 병원에 가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네 눈 보이게 만들거야. 내가 네 눈 지켜줄게. 걱정마. 괜찮아. 괜찮아.”

어느새 준호의 얼굴도 눈물이불로 온통 덮인다. 준호도 나를 안고 꺽꺽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품속에서 꺼내면 안 될 듯이 서로의 얼굴을 두 팔 가득 감싸안고는 한참을 울다 점점 잦아든다. 눈이 아픔이 준호의 울움이 나의 숨이 쌔근새근 평온을 찾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창밖의 하늘이 아까보다 더 짙은 불그스레한 핑크빛 망토를 두르고 있다.  뜨거운 기가 모두 빠져나간 물기 어린 수건이 아직 내 왼쪽 눈두덩이 위에 잠자고 있다.

방안에 울리는 노크소리에 슬픈 침묵이 눈을 뜬다.

“엄마 괜찮아요? 엄마 서울 이모 전화 왔어요. 할머니 이모 전화 온 것 같아요. 엄마 전화!”

어젯밤 커피머신 옆에 놓고 잔 내 전화기를 들고 첫째 딸이 문밖에서 기웃하다 조금 높아진 톤으로 말한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고 하여간 너무 아파서 준호에게 더 알아달라고 어리광 비슷한 걸 부리려던 차다. 딸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려 나는 하는수없이 방문을 열어 전화기를 건내 받는다. 왠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은 그런 날 그런 타이밍에는 꼭 그런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이모. 저는 잘 지내죠. 이모는요?”

딸에게 방문을 닫으라는 손짓을 하곤 서울에서 걸려온 향은이모와의 통화를 이어간다.

갑자기 눈이 다시 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니 보여야만 한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에 눈 한 번 찔렸다고 안 보일 눈이면 만드시지도 않았을 거야.’

종이 모서리에 손가락을 베어 본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눈동자를 찔리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보다 너무나 눈이 아팠고 눈이 멀까 겁이 난다. 그 뒤로 계속 다친 눈은 그 전의 눈이 아니다.  다행히도 왼쪽 눈이 완전히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예전만큼 보이진 않는다.

아무튼 그 날 그 밤 그 전화로 내가 향은이모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후로 내가 멀쩡하지 않다는 것 밖에는. 밥도 먹지 않고 물도 삼키지 않고 공기만 마시다 눈물만 흘리다 앉아만 있다 혼잣말만 하다 그러기만 했었다.

그렇게 이주가 흘렀다. 여전히 왼 쪽 눈이 다치기 전과 같지 않아 불편하다. 시력이 낮아졌음은 물론 빛에 굉장히 힘쓰지 못하는 눈이 되었고 밤에 빛을 보는 건 아주 버거운 눈이 되었다.

본래 안 다쳤어도 잘 안 보이는 오른쪽 눈, 그러니 하나 밖에 안 남은 모자란 왼쪽 눈. 둘 다 정상인의 눈보단 한참 모자란 시력이지만 어이없게 다친 왼 쪽 눈이 실명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준호와 네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이 한 눈이, 외눈박이 어미 물고기 같은 내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민소하
국어국문학 전공 후 등단, 작사가 구성작가 신문기자 등 글과 함께 살았지만 결혼으로 경단녀!
몬트리올 이주 13년, 웨스트 아일랜드 거주 11년차. 네 아이들과 씨름 중인 살림과 육아엔 소질 없는 불량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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