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

 

강현숙

 

한 여자가 흰 벽을 마주하고

치킨을 먹는다

흰 벽 안으로 들어간다

코카콜라를 마신다

한 여자가 흰 벽 밖으로 들어간다

갇힌 사각의 병동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해는 가볍게 떠오르고

뿌리도 없이 가볍게

전화를 거는 구름 같은 저녁,

공중을 떠도는 무수한 자음과 모음 중에서

형체를 겨우 지닌 말 한마디

사라진다, 무한하다

막창을 뒤집어 구우며 알게 된 그 여자는,

남자의 폰 바탕화면에 얼굴이 깔린 그 여자는,

뿌리도 없이, 잎도 꽃도 열매도 없이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얼굴, 얼굴, 마릴린 먼로*

한 여자가 카드를 긁어 계산을 하고

돌아서는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등 뒤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다

빈 허물 같은 육신이

고목나무에 달라붙어 있을 때도,

흔적도 없이 이 자리로 돌아와

다시 가볍게 휙 날아갈 때도, 세계는

시간을 건조하게 인쇄하고 있다

한 여자, 한 여자, 한 여자는

끝없이 인쇄되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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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며 좀 더 친숙해지고 싶다면. 팝아트 쪽 미술계의 흐름과 실크스크린으로 마릴린 먼로를 그린 엔디 워홀을 구글 검색창으로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팝 아트의 거장이며, 시드니 뉴리얼리스트 전에 캠벨스프 깡통으로 유명해진 작가이다.  그러니 시인이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 ‘마릴린 먼로’ 가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여자는 병원의 흰 벽을 안팎으로 들락거린다.  신경쇠약인지, 심각한 정신 질환인지 독자의 증상을 이입해 보는 것도 괜찮다. 연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단어의 점들로 불친절하게 찍어놓은 시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감성은 해체되고 몇 단어로 줄어든 인터넷 용어로 소통하는 시대에 인간성은 그냥 한 장 인쇄물로 계속 복제되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목포에서 약국을 하는 시인은 2013년 이 시를 ‘시안’ 에서 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