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일어나라 – 박노해

 

아가야 일어나라

 

박노해

 

아가야 일어나라

일어나 걸어야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거니

살포시 눈을 감고

엄마 품으로 걸어가려는 듯

운동화를 꼬옥 신고

붉은 볼의 얼굴을 파도에 묻고

꿈꾸듯 잠이 든 아가야

 

날마다 죽고 죽어

30만이 죽어간 분쟁의 땅에서

떨고 피하고 숨고 탈출해도

아가야 네가 안긴 곳은

엄마 품도 새로운 땅도 아닌

지중해 파도 속이었구나

 

아가야 일어나라

일어나 걸어야지

저 죽음의 바다를 딛고

저 미친 무기의 땅을 밟고

저 높은 난민의 벽을 타고

걸어야 해 아가야

 

아, 언제부터 포기해버린 전쟁의 땅

언제부터 문 닫아버린 국경의 벽

그렇게 굳게 닫힌 내 마음의 세계

그래, 여기도 사는 게 전쟁이라서

나 하나 살아남기도 너무 힘들어서

무관심의 파도가 발밑을 치는데

 

내 가슴을 꼭꼭 즈려 밟는

네 발걸음은 너무도 가벼워서

끝도 없이 줄지어 걸어오는

아이들의 행렬은 너무도 무거워서

내 가슴은 이렇게

깊이깊이 파이는데

 

아가야 일어나라

일어나 걸어가라

해 뜨는 땅으로

내 가슴을 꾹꾹 밟고

걸어가라 아가야

해변의 아일란아

 

-지중해의 파도 속에 묻힌 모든 난민들과

세살배기 아일란 쿠르디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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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터키경찰이 보드룸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3살)를 옮기고 있는 한 장이 사진은 전 세계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아기의 모습을 그려 넣으며 잠자듯 죽어있는 에이란 쿠르디를 애도하고 있다. 프랑스가 식민지 통치를 하다가 시리아와 레바논으로 갈라놓고 떠난 후유증이 이런 비극이 되는 모습은 일본이 한반도를 떠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사정과도 닮아있다. 갈라졌으니 내분이 일어날 수밖에. 박노해 시인도 이런 처참한 상황에 죽은 무고한 한 어린아기에 대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보다. 이것은 분명 사회적 타살이 맞다.그렇다고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은 또 어떻게 다스려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