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뿔을 불다 – 이선이

물소뿔을 불다

 

이선이

 

티벳을 가야겠다는

손금 같은 사연 담은 엽서 한 장

물끄러미 내다보는

오동나무 잎새 사이로

물소 한 마리 걸어나왔다

 

유적지 가을하늘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 들릴 듯한 눈망울이

멀뚱하다

 

저 물소와 함께 산다는 히말라야 고산족은

죽음 곁에 이르러

그 흔하디 흔한

꽃 대신 눈물 대신에

물소뿔을 불어준다 한다

 

우리 사는 동안

가슴을 들이치기만 하던,

바로 그 멍들

다음 生까지는 가져가지 말자고

새로 태어날 슬픔까지를 노래로 날려보내는 것이다

 

사는 동안 한번도 넘지 못했던 얼음산을

훌쩍,

녹이며 넘어가는 것이다

 

오동나무 잎이 엽서가 되고 그 오동나무 잎에서 물소가 나오고 물소는 시인을 히말라야로 데리고 간다. 공간을 넘어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가서 시인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말하는 사람은 산 사람이니 사는 동안 아픔은 다스려놓고 가라한다.  이선이 시인은 199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