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걷기

장석남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주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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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87항쟁의 도도한 물결이 응축되던 엄혹한 시절,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이 시가 당선되었다. 젊은 시인은 그 때 자신의 길을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나 보다. 참여시가 도도한 파고를 넘던 시절, 그의 목소리는 나즈막하고 문장은 서러웠다. 돌아보지 않고 눈 길을 가는 시인은 맨발이고 시선은 세상에서 비껴나 스스로의 내면을 보고 있었다.
장석남의 시집으로는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