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엉겅퀴 뿌리를 생각함

 

유종인

 

발이 차구나, 이 한겨울에

그 한여름 도서관 뒤편 산자락에서 뽑다 놓친 가시엉겅퀴 뿌리를 생각한다

손에는 몇 개의 가시들

살짝 박혔다 계곡물에 씻겨내려 갔지만

여름내 가시몽둥이 같은 보랏빛 꽃대를 밀어 올린 엉겅퀴 뿌리는

이 겨울에 눈밭 땅속 살림을 어떻게 견디는지 생각한다

한해살이 두해살이를 넘어

만년 죽음 곁에 우뚝할 청춘을 여투고 쟁이는지 생각한다

사랑이 오면 그것이 꽃만 말고

가시도 내고 시퍼런 가시잎도 내어

나를 찌르고 할퀴며 달려들어 뒹구는 짐승처럼

아직 달달하고 뜨거운 사랑의 피가 몇 종지나 남았느냐고 내게 되묻는 통에

손등과 팔에 흘리며 흘리다 만 피를 입술로 닦아 마시는 날을

가시엉겅퀴 뿌리는 무척이나 훔치고 싶어 언 땅속에서도 갑갑증이 이는가 생각한다

마음을 궁글리니 줄기며 가지 그보다 먼저 솟는 가시를

이 봄에도 제일 먼저 낼 것인지 생각한다

————————————————————————-

엉겅퀴도 눈이 잘 가지 않는데 하물며 엉겅퀴 뿌리에까지 마음이 가 닿는 시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리 삶의 구석구석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사물의 편린에 언어를 담는 자세 앞에 할 말이 없어진다. 청춘을 여투고 쟁인다는 표현이 음악처럼 다가와 아끼고 모아 쌓아둔다는 뜻이 그만 날개를달았다. 그렇게 아픔들이 쌓여서 상처를 이기고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봄을 그리고 싶었나 보다. 꽃보다 가시라고 유행어처럼 불러볼까. 유종인 시인은1996년 ‘문예중앙’, 2003년 ‘동아일보’에 시와 시조가 당선됐다. 시집으로 ‘아껴먹는 슬픔’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