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건달

황야의 건달

고영

어쩌다가, 어쩌다가 몇 달에 한 번꼴로 들어가는 집 대문이 높다

용케 잊지않고 찾아온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

쇠줄에 묶인 진돗개조차 꼬리를 흔들며 아는 체를 한다

짜식, 아직 살아 있었냐?

장모는 반야심경과 놀고 장인은 티브이랑 놀고

아내는 성경 속의 사내랑 놀고

아들놈은 라니자와 놀고

딸내미는

딸내미는,

처음 몸에 핀 꽃잎이 부끄러운지 코빼기 한 번 삐죽 보이곤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아빠를 사내로 봐주는 건 너뿐이로구나

그것만으로 충분히 고맙고 황송하구나, 예쁜 나의 아가야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식탁에 앉아 소주잔이나 기울이다가

혼자 적막하다가

문득,

수족관 앞으로 다가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블루그라스야, 안녕! 엔젤피시야, 안녕!

너희들도 한잔할래?

소주를 붓는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단절된 가족 관계를 통해서 현대인의 고독이 몸을 숨긴채 시 속에 배여있다. 아버지를 통해서 바깥 세상을 배운다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을까? 아이 교육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족이 떨어져서 기러기가 된 아버지의 적막감이 문득 떠오르는 시다. 그러나 아버지들이여, 힘내시라. 고영 시인은 2003년 ‘현대시’로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