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의 위안 – 조병화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도정일이란 사람이 ‘문학은 인간이 경험하는 추락과 상처, 상실을 처리하는 기술’이라고 했다지요.  조병화 시인의 하루는 이렇게 이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었나봅니다. 그가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날은 어떤 날이였을까요? 수많은 연애편지 같은 시를 독자들에게 남기고 잊혀져가는 한 시인이 안타까운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