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대법원, ‘콘돔 스텔싱’ 성폭행 처벌 가능성 인정

콘돔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밴쿠버=연합뉴스) 조재용 통신원 = 성관계시 콘돔을 사용한다고 약속하고서 상대를 속이고 이를 착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는 이른바 ‘스텔싱’ 행위에 대해 캐나다 대법원이 성폭행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결론냈다.

29일(현지시간) 캐나다 CBC 방송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만장일치로 스텔싱이 성폭행 여부를 판단하는 법적 근거인 ‘동의하의 성관계’를 위반할 수 있다는 행위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서를 통해 “성관계시 콘돔이 있고 없고는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형태가 판이한 육체적 접촉”이라며 “상대가 콘돔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성관계에 동의한 고소인(여성)은 그렇지 않은 성관계엔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고소인(남성)의 유무죄는 판단하지 않은 채 파기환송심을 명령했다.

이 사건은 2017년 한 여성이 온라인에서 만난 남성과 성관계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성관계 전 콘돔을 사용하기로 약속했으나 두번째 성관계에서 남성이 콘돔을 착용하는 척하며 여성을 속인 뒤 콘돔없이 성관계를 했다.

이를 나중에 알게 된 여성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법원에 고소해 기소돼 재판이 열렸지만 콘돔을 사용하기로 동의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후 2020년 항소심에서 1심 무죄 판결이 파기되자 남성이 대법원에 상고했고, 이날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기각 결정은 만장일치였으나 그 이유에 대해선 5대4로 팽팽히 갈렸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 4명은 “콘돔 착용의 동의 문제는 형법에서 규정한 ‘성적 행위’에 속하지 않는다”며 이는 성범죄로 다루기보다 사기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범죄 여부는 이 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했는지가 법적 쟁점일 뿐 콘돔 사용을 속인 행위는 성적 행위가 아니므로 성폭행 혐의의 유무죄를 다툴 수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 대법원은 2014년 남녀 모두 동의한 성관계 도중 남성이 여성 몰래 콘돔에 구멍을 뚫었고, 이 때문에 임신하게 된 사건에서 남성의 사기 범죄가 성립된다는 판례(허치슨 사건)를 수립했다.

이런 소수 의견에 대해 다수 의견서는 “허치슨 사건은 이번 경우엔 적용할 수 없다”며 “콘돔 사용이 성관계의 조건이었다는 것은 콘돔 없이는 성관계라는 육체적 행위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성관계의 동의 문제에서) 오직 ‘예는 예이고 아니오는 아니오’인 것이지, ‘콘돔이 없다면 싫다’ 또는 ‘콘돔없어도 좋다’는 될 수 없다”며 성관계에서 ‘조건부 동의’는 없다고 밝혔다.

jaey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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