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 김형주

치매 진행 중인 엄마를 위한

 

김형주

 

수박 한 통이 굴러간다

꼭지 끝 파인 속살에서

꽃물 같은 기억을 흘리며 뛰어간다

추상화처럼 꼬불꼬불한,

야속한 골목길 어두워져 가고

딴짓하다 엄마 심부름 늦은 아이,

달려가다 어둠에 넘어져

엄마 기다림 길에 깨트려놓고

주저앉아 울먹이는 저녁,

머리 통 만한 푸른 기억을

새끼줄에 꽁꽁 묶어

엄마에게 다시 안겨줄 수 없을까

수박 몇 통 사들고

그 해 여름 선명하게 잘라

엄마에게 자꾸 권하는

아직도 덩치만 큰 아이는

 

읽다보면 남의 일이 아닌 이 시는 어쩌자고 독자를 어린 날의 새끼줄에 묶어놓을까. 어떻게 이리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을 평범하지 않은 낱말들의 조합으로 바꿔서 마음에 맺히게 할까.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엄마가 그리워지게 만들어버린 김형주 시인은 1998년 해외문학 신인상을 수상했고, 현재 토론토 ‘시 6’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흔쾌히 시를 실을 것을 허락해준 시인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