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음에 대하여 3 – 너에게

 

젖음에 대하여 3 – 너에게

박애린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창밖에 뭐라도 내리는 날에는 떠나지 않는 생각

함박눈에 허리를 굽히는 굴뚝 연기나

빗방울을 털어내는 새의 날개는 언제나

마른 시간 쪽으로 방향을 잡아내는데

무슨 말을 하든 변하지 않을 내일도

잃어버린 말들은 찌푸린 미간 속에 잠겨

나는 커피 한 모금으로 쓰린 속을 적시며

애수에 젖고 상념에 젖고 그리움에도 젖는 습관에 젖어갈 텐데

삐걱대는 탁자 발밑에 슬쩍 고여두거나

자꾸만 말려 올라가는 종이 위에 꾹 눌러놓을

그렇게 바삭하게 마른 말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땅으로 내리는 건 무엇이든 젖은 것들뿐

나는 너에게 말 한마디 보내고 싶어 새벽 눈을 뜨고

축축한 창 너머를 자꾸만 흘깃거리는데

네가 보일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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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란 한 생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저 한 사람을 그리워한 것 뿐인데 세상은 온통 자신에게 물에 젖어 바닥으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리운 사람 하나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은 고통일까, 축복일까… 시인에게 언젠가 그를 온전히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행운일까 또는 저주일까… 박애린 시인은 경희해외동포 문학상, 미주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고 현재 몬트리올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