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이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
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
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
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
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
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도않는
꽃이 – 보이지도않는꽃이
희랍인들은 시간을 3가지로 나누었다. 자연의 시간인 크로노스, 의지의 시간인 카이로스 그리고 신의 시간, 즉 영원의 시간인 아이온이다. 불교에서는 현상現像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을 없고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있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중생에게 인지시키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시인은 만물을 창조하는 신을 흉내낸 것은 아닐까.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보는 관계로 현재의 흐름에 익숙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있다. 하지만 시인이 풀밭에 앉아 꽃을 바라보면서 상상을 한다면, 또 그 상상을 글로 풀어놓았다면, 읽을수록 웬지 쓸쓸한 이 시가 용서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