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과 밤의 사이에서 서성거리다

 

마경덕

 

해질 무렵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햇살에 등을 데우던 나무들이 남은 온기를 속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언젠가 어둠 속에서 바라본 강 건너 불빛 서너 개 정도의 온기였다

어린 새들이 둥지에 드는 동안

맨발로 이곳까지 걸어온 저녁은 신발을 고르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걸린 저녁의 신발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헐렁한 신발을 신고

저녁이 허리를 펴는 순간,

일제히 팔을 벌리는 나무들, 참나무 품에 산비둘기가 안기고

떡갈나무 우듬지에 까치가 자리를 잡았다

잘 접힌 새들이 책갈피처럼 꽂히고

드디어 저녁이 완성되었다

해가 뚝 떨어지고 숲은 서둘러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저녁과 밤이 이어지는 그 사이를 서성거리며

난생 처음 어둠의 몸을 만져보았다

자꾸 발을 거는 어둠에게 수화로 마음을 건네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더듬더듬 길을 찾는 동안, 자정의 밤은 산꼭대기까지 차올랐다

뻘밭에 빠져 달려드는 바다를 바라보던 망연한 그때처럼

일시에 몰려든 어둠으로 숲은 만조였다

썰물의 때를 기다려야한다

어제와 오늘을 이어 붙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들도 한줌 체온을 껴안고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외출이 신발을 신는 것으로 완성되듯이

신발 끈을 조이며 어둠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수척한 밤이 몇 번이나 나를 들여다보고 지나갔다

어둠의 이마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어린왕자가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면서 오래도록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 것처럼 시인도 해질녘 오래도록 그 풍경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 풍경속에서 내일을 보고 또 스스로를 보았던 것이다.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한 시인은 또 여러번 문장을 쓰고 또 고치고 했을 것이다. 마경덕 시인은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고 시집으로 ‘신발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