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트가 아픈 날 2

자네트가 아픈 2

 

박상순

 

나는 항아리를 만든다.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이제는 틀어져버린 솜씨로, 틀어진 항아리를 만든다. 내가 주둥이를 최대한 작게 마감할 동안 그녀는 약을 먹는다.

 

나는 노래를 듣는다. 약에 취한 그녀의 노래, 음악대학을 다닌 솜씨로, 그녀는 항아리를 노래한다. 나는 항아리 속으로 들어간다. 항아리 속에 그녀의 이름을 새긴다.

 

그녀가 아픈 , 나는 항아리를 만든다. 그녀의 이름을 새기고 그녀의 노래를 묻고 마침내 그녀를 묻고,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뚜껑을 밀봉한다.

 

그녀가 아픈 , 나는 가로수에 대해 공부한다. 그녀를 묻은 뒤에도 나는 가로수만 생각한다.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노란 가로수, 불타는 가로수, 속에물고기가 헤엄치는 가로수, 노래하는 가로수,

 

이제는 까먹어버린 솜씨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 담겨질 거대한 항아리를 만든다. 담겨질 사람이 없다. 나는 다시 가로수에 대해 공부한다. 거꾸로서는 가로수, 날개달린 가로수, 돌덩이를 삼킨 가로수, 항아리를 삼킨 가로수,

 

나를 줄에 묶어 책꽂이 뒤로 끌고 가는 가로수, 나를 잡아먹는 가로수, 온몸이 항아리처럼 불어난 나의 가로수.

            낯설기도 하지 그의 노래는 찰흙을 가지고 놀던 유년의 장난질을 어른이 독자들은 기억이 아물거리는걸. 그럼 컴퓨터 그래픽을 가지고 노는건 어떨까? 세상을 네모난 스크린 속에 풀어 놓는 광고는 어때? 항아리가 여자친구가 되고 그의 자궁이 된다면? 그래서 속에 세상을 담고 또한그 속에서 숨박꼭질을 한다면? 시는 이토록 자유롭고 즐겁다고 설명하지 않고 전해주는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쓰는 시인인 까닭일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