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는 소리

일어서는 소리

이정휘

 

1

어둠이 잎잎마다 녹아 흐르고

달빛이 대지를 적시며 잠 재울 때

흔연히 일어서는 소리를 보아라.

 

우리들 가슴 가장 깊은 곳

숨죽이며 앉았던 조각들이

넘실대는 우리들을 일으킨다.

 

2

반쪽뿐인 우리들 얼굴이

스스로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패배하여

일어서 본 적도 없이

무릎에 상처만 만들다가 끝내 실신하였다.

무수히 긁힌 무릎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아직도 찾지 못한 나머지 얼굴

 

흔들려 깨어지는 머리 속으로

쏟아지는 달빛 가운데

나는 보았다 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소리들.

가슴 속에

부서져 앉았던 소리들이 일어나와

반짝이는 빛이다가

얼굴이 되는 것

나의 무릎엔 새살이 돋아나오고

 

이 시는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인지, 아픔은 아픔대로 저항은 저항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어서다 무너져서 상처를 안고 바라본 하늘에 빛나는 것은 촛불이 되고, 별이 되고, 시인이 되었다.

3년전에 작고하신 ‘자전거 도둑’이란 시로 잘 알려진 신현정 시인의 부인이기도 한 이정휘시인은 몬트리올에 살고 있으니 지나가다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해야겠다. 흔쾌히 지면에 시를 싣도록 허락해주신 시인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