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집 (2019), 윤가은 감독 인터뷰 – 캐나다한국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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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집의 시나리오, 영화 만들기의 영감과 배경이 있다면 ?

<우리집>은 ‘가족을 등에 업고 사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오랜 열망에서부터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분명 부모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구성하는 일원인데 정작 중요한 결정에서는 늘 배제되고 소외되잖아요. 저도 어릴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불화를 지켜보거나 이사를 가야할 때 특히 더 그랬구요. 부모님이 힘들어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게 어린 제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속한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한 경험이었달까요. 저는 비록 아이였지만 어떻게든 세계를 다시 살려내보려고 나름 엄청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어른들이 보기엔 아이들의 그런 노력과 정성이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사랑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치열하고 절실한 것인지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2. <우리집> 촬영 당시, 아역 배우에 대해 감독님이 가지셨던 기대감 혹은 에피소드를 듣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의 시선을 통해 비쳐지는 세상을 그린 감독님의 관점이 궁금합니다.

사실 이전에 <우리들(2016)> 이라는 장편영화를 만들고 나서, 한동안은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어린이란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집(2019)>을 만들면서는 제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인 배우들이 아무리 성별이 같고 나이가 같아도 개별적으로는 모두 다른 사람인 것처럼, 어린이-청소년 배우들도 성별에 따라 또 학년 차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였어요. 이전에 제가 만났던 배우들과는 완전히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거였습니다.

이후부터는 맨 처음부터 관계를 쌓고 같이 작품을 만들어가겠다는 생각으로 배우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제가 시나리오에 썼던 캐릭터들의 모습도 조금씩 실제 배우에 맞춰 수정해나가게 되었구요. 예를 들어 하나는 원래 더 수다스럽고, 오지랖에 가까울 정도로 여기저기 참견도 많이 하는 친구였어요. 그런데 실제 김나연 배우와 즉흥극 리허설을 하다 보니,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아도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대사들을 많이 덜어내게 되었고, 말보다 표정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더 좋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미도 제가 원래 생각했던 느낌은 더 강하고 센 아이였어요. 동생을 지켜야 하는 언니의 느낌을 강하게 주고 싶었거든요. 말도 거침없이 툭툭 내뱉고, 좀 되바라져 보일 수도 있는 아이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김시아 배우는 동생이 무려 셋이나 있는 맏언니였지만 전혀 그런 거칠고 야생적인 느낌이 없었어요. 오히려 아주 의젓하고 똑부러지게 예의를 지키는 반듯한 친구였는데, 그런 점이 더 맏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리허설을 하면서 그런 김시아 배우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던 것 같구요.

그런 식으로 배우들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이 제가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좋아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고요.

3. 감독님이 바라보는, 또는 함께 하는 한국영화산업에서, 현재 여성영화 감독과 스탭들의 입지와 환경, 또한 연대의식, 그런게 있는지요? 그렇다면 감독님은 어떤 그런 의식을 가지고 영화 작업을 하시는 지요?

제가 영화를 꿈꿀 때는 사실 많은 여성감독님들이 계시진 않았어요. 그래도 다행히 제게 힘과 빛이 되어주신 훌륭한 여성감독님들을 보면서 겨우 앞으로 나갔던 것 같아요. 이정향, 임순례, 변영주, 정재은, 이경미 감독님과 같은 분들의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막연히 감독의 꿈을 키운 거죠. 하지만 수적으로는 너무 적었고, 여성 스탭분들은 누가 계신지 알 길도 없어서, 정말 소수의 여성만이 영화인이 된다는 공포가 있었습니다. 늘 마음 한켠에, 여성으로서 감독이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감독이 되더라도 외로울 거라는 두려움과 불안도 있었던 것 같구요.

그래서 여성 동료들을 우연히라도 만나면 굉장히 끈끈한 연대의식 같은 게 생겨났던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이 다 너무 귀하니까, 그리고 다들 어떤 마음으로 애를 쓰며 여기까지 왔는지 눈에 선하니까 더 애정도 갔구요. 장편영화를 만들고 난 뒤에는 더 많은 여성 감독님들을 만나게 되서 정말 너무너무 기뻤어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의 마음에 그런 반가움과 신남(?)이 솟구치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우리 여기까지 왔다’, ‘다들 얼마나 고생했니’, ‘우리 앞으로 더 잘 해보자’, 같은 말을 속으로도 많이 하게 되고, 실제로도 서로에게 위로겸 응원겸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성감독님들 만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다들 서로 애쓰는 것도 느껴지고요. 그냥 귀한 것 같아요. 그런 동료가 있는 게.

여성으로서 영화인이 되는 게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고, 외로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 요즘이에요. 혹시 후배님들 중에 과거의 저같이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면 절대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그래서 더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앞서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작품 만들어주시는 선배님들처럼, 저도 오래오래 성실하게 작품 만들어서 후배 여성감독님들 앞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이따금 들구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가끔 힘도 나고 좋습니다. 그래서 일단 힘 닿는 데까지는 부지런히 열심히 즐겁게 해보려고요.

4. 감독님이 함께 일하는 여성 스탭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저는 운좋게도 계속 신뢰하는 스탭들과 같이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요. 대략 성비가 남녀 5:5로 비슷한 비율인 것 같습니다. 여성과 남성 스탭 모두 젠더와 인권 등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풍부하고 깊게 발달한 친구들이라 저도 매번 많이 배웁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연출부는 여성 스탭이 좀 더 많은 편인데요. 여담이지만, 특히 여자 어린이 배우들과 일할 때 성별이 여자인 스탭이 훨씬 장점이 많습니다. 생리 현상을 해결할 때 좀 더 쉽고 편하게 보호자가 될 수 있고, 의상을 갈아입거나, 분장을 수정하거나, 몸에 무선 마이크를 장착하는 등의 신체 접촉이 있을 때도 더 편하게 생각하고요. 호칭은 보통 “00샘(선생님)”으로 부르는데, 아주 어린 친구들은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언니”나 “엄마”하고 부를 때도 있어요. 때론 배우들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어려움을 느끼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수습해주는 여자 스탭들이 많아서 늘 든든합니다.

가장 오랫동안 같이 일한 여성 스탭으로는 박세영 편집감독과 황슬기 감독이 있어요. 황슬기 감독은 저의 작품에선 조감독과 스크립터로 도와주었지만, 현재는 아주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유능한 감독이구요. 박세영 편집감독은 단편영화부터 같이 작업을 해왔는데,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 알게 해준 스탭입니다. 둘 다 저랑 10년이 넘은 친구들이기도 해서, 특히 시나리오를 수정할 때 제가 둘 모두를 붙들고 끈질기게 자주 물어봐요. 새벽에도 급하면 잠든 친구들을 깨워서 시나리오를 보내고 제발 읽어보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매달린 적도 많습니다. 둘 다 언제나 거절 한 번 없이 정말로 시나리오를 면밀히 읽고 항상 옳은 이야기를 해줘요.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느끼는 점에 대해 솔직히 말해줍니다. 다음엔 절대 그렇게는 괴롭히지 말아야지 해놓고,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엄청 괴롭혔어요. 평생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친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