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다가
그를 위해 기지개를 켰다
놀랐던 기다림의 관절과
검게 타던 가슴이 활짝 펴졌다
벅찬 소유의 지름이 팽창하자마자
현기증 같은 이팝나무 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폭을 맞춰 동행하는
둘만의 세상은 단출했다
그를 위해 만든 공간에서 사랑은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밖에선 꽃비가 계속 웅성거렸고
나의 중심을 빼앗은 손은 뜨거웠다
이별이 왜 왔어야 했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그는 익숙하게
사랑을 접었고 나은 순종했다
접힌 내 사랑은 봄비를 기다리며
다시 끈질긴 동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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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를 맞으면서 꽃이 지는 길을 걷던 옛사랑의 기억이 시가 되었다. 검은 우산을 가지고 어떻게 이런 시를 풀어낼 수 있었을까… 게다가 시인은 간절함을 떠벌리지 않는 미덕을 가졌다. 지난 사랑의 안타까움은 독자들 스스로의 기억으로 채색하시라고. 김형주 시인은 토론토 문인협회 회원이고 ‘시 6’의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