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의 바깥을 읽다

연꽃의 바깥을 읽다

-월하정인

서안나

당신은 모든 사랑의 질문이다

나는 입도 없이 고요하다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긴 머리카락 풀고 미끄러운 물의 경전을 읽는다 내가 늙어가는 소리 들린다 당신을 떠올리고 지우는 건 마음의  오래된 치유의 기술 침묵은 비천한 사랑에도 향기를 돌게 하여 정인(情人)의 눈빛은 흐릿하고 향기롭다 비서(秘書)를 펼쳐 낡은 주술을 외운다 어둠으로 어둠을 뜷을 것이다

당신은 나의 왼뺨에서 오른 뺨으로 건너간다 나는 썩을 때로 썩은 진흙 손가락으로 당신의 빛나는 등을 어루만진다 천개의 발로도 떠날 수 없는 첫 마음은 뿌리에 깃들어 왜 웅크려 있는지 당신에 대해 질문하면 물결 속에서 아스피린 냄새가 난다 나는 긴 머리카락을 풀어 비탄의 곡조로 흔들리고 흔들릴 것이다 꽃잎을 여는 건 연꽃의 바깥을 캄캄하게 읽는 일

 

가스통 바슐레르의 ‘꿈 꿀 권리’에는 모네의 ‘연꽃’ 그림에서 연상되는 목욕한 소녀의 아름다움을 한껏 풀어놓은 구절들이 있다.  시를 읽으면서 덫이 되는 것은 독자들이 시를 연상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힘을 들인다는 데 있다. 시는 언어를 입은 그림이고 꿈이고 음악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투정하지 마시라. 낱말과 낱말 사이에 울림이 있고 색깔이 있으니 그 울림이 아름다고 아파서 그대 마음에 와 닿는다면 좋은 시인 것이다. 그동안 모든 익숙했던 언어의 질서를 엿먹이고 있는 서안나 시인은 1990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