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샆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심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시인 백석. 본명은 백기행. 90년대에 와서야 겨우 그와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월북 시인이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평안북도정주定州가 고향이라 굳이 트집을 잡자면 월남하지 않았다고 붙여야 했다. 그의 시집을 손에 들고 세상 참 좋아졌다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세상이좋아진 것이 아니고 그동안 한 특정한 세상이 나의 권리를 짓밟았던 것이라고…
백석을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자야’라고 불리웠던 백석의 여인, 대원각을 내놓은 김영한 할머니다. 현재 대원각은 길상사란 절로 바뀌어 남과 북으로 갈라진 두 사람의 운명을 두고 두고 기억하게 하는 장소가 되어있다.
지금 물난리를 겪고 있는 북한 소식을 듣고있자면 이 시에서 처럼 지아비는 집을 떠나고 아이를 돌무덤에 묻은 파리한 여인이 절 집 마당에서 머리카락을 뚝뚝 떨궈놓는 모습과 겹쳐진다. 그래서 시어詩語가 평안도 사투리로 산꿩에게 울음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