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불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넘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세상에 태어나서 겪은 두가지 공포는 굶주림과 공포라고 말했던  황지우시인은 한국사의 민주와 과정속에서 살아온 시인이다.  또한80년대의 기호가 된 그의 해체시들이 문단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 그런 황지우 시인이 어느날 아무도 하늘을 보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상처받는 것들에 아파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더이상 시를 읽지 않는 것처럼 그만 늙어버린다면 어쩌나…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과 단절되어버리면 어쩌나… 이 시에서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