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드라큘라

 

하재연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이거나 노인의 얼굴로

영원히 당신의 곁에 남아

사랑을 다할 수 있다.

세계의 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햇살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살아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은 당신의 소년을 버리지 않아도 좋고

나는 나의 소녀를 버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세계의 방들은 온통 열려 있는 문들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고통스럽다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이 나를 당신에게 허락해 준다면

나는 순백의 신부이거나 순결한 미치광이로

당신이 당신임을

증명할 것이다.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낳을 것이고

우리가 낳은 우리들은 정말로

살아갈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처음 내는 목소리로

안녕, 하고 말해 준다면.

나의 귀가 이 세계의 빛나는 햇살 속에서

멀어 버리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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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젊은 시인이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방법은 낯설다. 사랑, 소녀, 소년, 우리, 햇살, 고통, 아름다움…. 의식적 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종이에 적어서 오린 후 후루룩 섞어서 파편처럼 만들어 문장에 붙여보자. 적나라한 고통을 문장 사이에 숨기기 위해서 쓰는 이런 방법은 깜찍하게 눈을 반짝이며 늘어진 일상의 표피를 째려본다. 아프지 않은가, 이 시인이 긁어 부스럼 만들고 있는 사랑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하재연 시인은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을 냈다.  그리고 이 시는 한겨레 신문에 난 것을 슬며시 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