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

허수경

당신은 당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돌아갈 집이 없는 나는 
모두의 집을 찾아 나섭니다 

밤 별에는 집이 없어요 
구름 무지개 꽃잎에는 우리의 
집이 없어요 나는 아버지가 돌아간 
집에는 살 수 없는 것 
세월이 가슴에 깊은 웅덩이로 엉겨 있듯 
당연한 것입니다 

전쟁을 겪어 불행한 세대가 
전쟁을 겪지 않아 불행한 세대가 
세월의 깃을 재우는 일조차 다른 것 
그래서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 

배고픈 어미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땅을 가로질러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함께 노래를 하고 꿈을 꾸고 

아버지 나는 갑니다 
모두의 집을 찾아 칼을 들고 
눈물 재우며  

——————————————-

“앞으로 고통이 있다면 나의 몫이요 그 고통으로 빛나는 날이 예비된다면 이 땅에 내가 노래해야 할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몫이다” 라고 썼던 허수경시인에 비추어 고통은 아비를 통해서 핏줄로 내려온 시인의 숙명이었던 것 같다.  시에서는 전쟁을 언급하지만 전쟁은 겪은 세대만이 아니라 세상을 일으켜 세우려는 모든 세대에게 주어진 세로 지어야 할 집이다. 올해 호치민 시티(옛 사이공) 전쟁 박물관에서 본 참상이 한국 전쟁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에 이 시가 더욱 모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