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황동규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 江물을
석양夕陽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로旅程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木琴소리 木琴소리 木琴소리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 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아늬,
석등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四面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石燈 곁에
밤 물소리.

낡은 단청 丹靑 밖으로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음을 내려다보면 낙엽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하는 등 燈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 燈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鄕愁와 같은 것에 싸여 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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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풍경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겹고, 마음은 자꾸 시인의 안을 들여다본다. 시인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낙엽 지는 절의 뒷 울타리에 서있다. 석등의 등불은 어디를 비추고 있는가… 스스로를 내려놓는 마음을 가을 시 한편이 담고 있다.

황동규 시인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삼남에 내리는 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