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부도 浮屠 – 염창권

세월을 견디는 몸짓으로

침묵만한 것이 없음을 알겠다

연꽃 무늬 위에 커다란 마침표로 앉아 있는 부도 한 점

나뭇잎들은 떨어져 쌓인 후

얼마나 빨리 부패의 길을 건너갔던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손쉽게 늙어갔던가

사실 그리움이란 이미 시들어버린 나뭇잎과 같은 것이다

응혈진 살덩이가 사리 한 과 빚는가 싶었으나

그대를 좇다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진

무릎뼈 한 조각 육신 속에 닳고 닳다가

희고 동그란 마침표 하나 만드는 것을

정신이나 영혼은 우리가 배웠던 부도附圖  책과 같아서

살덩이를 따라가면서 너무나 쉽사리 흐무러져버리네

살 떨리던 그대와의 입맞춤

허파꽈리까지 온통 초록빛으로 반짝이던 그 순간은

해탈의 순간과도 같았을 것이나

그대 떠난 후 느낌은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메마르고 부르튼 입술만 남았다

버석이는 나뭇잎들이 바람에 쓸리는

가을 하나절,

탁 탁卓卓 적을 때리며 밤톨이 떨어진다.

사찰 근처에 가면 볼 수 있는 부도밭에는 돌아가신 스님들의 사리나 뼈를 모신 부도밭이 있다. 잎이 지는 가을 날 그곳에서 시인은 연꽃무늬 아로새겨진 부도를 보며 한 순간 삶이 가진 해탈의 순간이란 무었인지 생각해 보고 있다. 하얀 사리 한 점이 세상에 맞침표를 찍는다고 말하는 순간, 아프고 적막하지만 모든 설명을 감추고 있는 것이 염창권 시인의 덕목이다. 시인은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