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가을 숲에 들다

 

강미영

 

어젯밤 내린 비 거나하게 한 잔씩 드셨는가

주거니 받거니 벌겋게 노랗게 나무들 취하셨다

내 말은 이렇고 나의 말은 또 이렇다고

빨갛게 벌겋게 샛노랗게 왁자하다 가슴에

쌓였던 것들 왜 없겠느냐 하고

나무들의 수다를 그 잎들의 말을 아프게 듣는 가을

내 맘도 내 말도 그와 같아 내 입도 왁자하게

취하고 싶다 진군하는 북풍에 누룩 그름 버무려 빚은

가을비 한 잔 얻어 마신다 수다스런

나무들의 주사酒邪 속으로 따라 들어가 나도 함께

취하자 취하자 취하자 취하자 지난 여름, 내

깊은 허물 감추었던 초록의 갑옷일랑 던져 버리마

한 잎 한 잎씩 벗어 내리며 쏟아내는 한 판 말로

노랗게 빨갛게 온 세상을 물들이는 말 말 말들의

소동, 뿌리까지 휘황하게 취한 나무의 맘에는

이제 슬픔 없겠다 비워진 입 비워진 몸 이제 그들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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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 별건가 흔들리면서 한 잔, 상처 받으면서 한 잔, 헤어지면서 한 잔… 그러다 보면 세월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모든 허물 벗어놓고 편안하게 잠들 때도 오겠지. 제 6회 민초문학상 수상 작품이 이 시를 보면서 단정한 시인도 때로 자신을 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구나….지금은 고향 여수로 돌아가서 캐나다 단풍나무 숲길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강미영 시인은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현재 토론토 문인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시집으로 ‘꽃이 죽어가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