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가루 커피를 타며 무심히 수저통에서 제일 작은 것이라고 뽑아들어 커피를 젓고 있는데 가만 보니 아이 밥숟가락이다
그 숟가락으로 일부러 않던 버릇처럼 커피를 홀짝 떠삼킨다
단가 쓴가
가슴이 뻐근하다
빈 집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발치에 와있는 햇빛
커피 한 잔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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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금 시인의 곁에 없다. 그냥 숟가락만 남긴채 훌쩍 커서 따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엄마와 함께 해외에 공부를 하러 갔는지 독자는 상상을 해볼 뿐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없는 지도 모른다… 라고도 생각도 해보지만, 발치에 와 있는 햇빛이라는 표현 때문에 거기까지는 다행히 아닌 것 같다.
그냥 쓸쓸함에 겨워 햇빛을 혼자 발로 툭 차보는 풍경이 그려진다.
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심정도 이러하리라.
장석남 시인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 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외 다수가 있고, ‘김수영 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