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짧게 요약한다면 ‘사랑은 짧고 그 후유증은 길다’ 뭐 이런거겠지. 그러길래 세상에 공짜가 없는 건가봐.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더니 그 값도 꽤 비싼가보네. 그 덕에 미당 이래로 한번더 선운사는 꽃이 피고 지는 곳의 배경이 되어버렸네. 그러니 독자는 또 선운사라는 곳에 가면 나도 사랑의 아픔에 지는 꽃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되지. 요새 여행 에세이집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를 펴낸 최영미 시인이 산문집에서는 세상과 화해를 했는지 궁금해 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