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식
서른두 마리의 조각된 새를 돌보겠다고 나선 건 나였다
그 일은 닫힌 문의 빗장을 푸는 일처럼 간단해 보였다
먹이를 줄 필요도 없고 사랑으로 감쌀 필요도 없고
집을 만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가끔 그것들을 벽장에서 꺼내어 마른 천으로 닦아주기만 하면 됐다
새들은 어떤 것은 반짝반짝 빛났고 어떤 것은 더 검어졌으며
어떤 것은 지저귀기 위해서 부리를 벌렸다
그사이 수미산은 히말라야의 뾰족한 산에서
점점 둥근 태양 같은 것이 되어갔다
새도 개구리도 칡뿌리도 마구 잡아대고 캐대어
해탈 같은 건 쉽게 포기가 되었다
녹색과 흰색이 뒤섞인 식물은 해마다 벽과 지붕을 점령했지만
시간은 늙어가는 아버지와 같았다
구름 아래 잠자리들은 숫자가 너무 많았다
창 밖의 제비들이 낚시하듯 잠자리들을 낚아채 갔다
온갖 얘기를 소곤거리는 새들의 세계로 돌아가기에는
나는 이미 근심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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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지루한 어느 날 안방의 벽장위로 올라가서 당장 쓸 일이 없는 물건들을 끄집어내어 상상력을 동원해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단어를 끄집어내는 놀이를 하는 중이다. 말끝놀이같은 시를 쓰면서 시인은 갑자기 어른이 된다. 주변은 사소하고 이 사소한 것들을 낚아채어 ‘알리스와 원더랜드’ 놀이를 하다 문득 깨닫는다. 나는 어른이 되버린것이다.
박판식 시인은 ‘동서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