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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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아침’이란 시를 가지고 안재찬이란 이름을 올렸던 류시화시인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여행기를 내고 한시절 풍류를 퍼트리며 독자들에게 가까이 있었다. 한동안 그의 시를 접할 수 없다가 만난 이 시를 보면 그도 절망하고, 상처 받고 무너지고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구나…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