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아주 가끔은
사과나무 아래 서고 싶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
두팔 벌리고 선
사과나무 밭
태양이 눈부신 날이어도 좋고
눈 내리는 그 저녁이어도 좋으리
아주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어도 좋고
사과나무처럼 늙은 뒤라도 좋으리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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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하늘과 사과나무를 배경으로하고, 그 셋이서만 한동안 숨쉬기를 하고 있다면, 말도 지우고, 지나온 길도 지우고… 그렇게 오랫동안 향기로울 수 있다면… 사과향기 깊어지고, 햇살은 한껏 퍼지고 모든 거추장스러운 행간은 이 시처럼 지워질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