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
서정춘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줄 닽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망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 첫 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뿐이다
여러 번 손을 대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응축된 단 한 방울의 이슬이 맺히듯 쓰여진 시 한편을 만났다. 어딘가 빈 곳이 있는 것 같지만 그 행간은 팽팽 하다. 그것을 연륜이라고 하기도, 내공이라고 하기도… 딱히 찾아낼 단어가 무색한 이 아름다운 편안함을 가장한 긴장감은 어느 보이지 않는 큰 산맥을 넘어 독자에게 왔을까… 서정춘 시인은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나서 29년 만에 첫 시집 ‘죽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