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밥
이병률
봉지밥을 싸던 시절이 있었지요
담을 데가 없던 시절이지요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넣고
가슴팍에도 품었지만
어떻게든 식는 밥이었지요
남몰래 먹느라 까실했으나
잘 뭉쳐 당당히 먹으면 힘도 되는 밥이었지요
고파서 손이 가는 것이 있지요
사랑이지요
담을 데가 없어 봉지에 담지요
담아도 종일 불안을 들고 다니는 것 같지요
눌리면 터지고
비우지 않으면 시금시금 식어버리는
이래저래 안쓰러운감정의 형편이지요
다 비운 봉지를 뒤집어
밥풀을 떼어먹느라 봉지 안쪽을 받치고 있는 손바닥은
사랑을 다 발라낸 뼈처럼
도무지 알 길 없다는 표정으로 말갛지요
정해진 봉지에
더 비우거나 채워야 할 부피는 무엇인지요
눈발이 닥치더라도 고프게 받아
잘 뭉쳐놓으라는 이 요구는 무엇인지요
바람이 봉지를 채간다고
사랑 하나를 치웠다 할 수 있는지요
봉지를 끌고 가는
이 바람의 방향을 외면하는 것으로
사랑 하나 비웠다 할 수 있는지요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 어찌 밥 뿐이랴. 먹어도 허기가 지는 날들이 또한 얼마이며 애써 외면한다고 외로움에서 해탈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의 빈봉지를흔드는 바람처럼 만나게 된 시 한편이 두고 두고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고 묻고있다. 현대문학에 발표된 이병률 시인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