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가난이야 자청한 일이니 후회될 일 바이없고
병고는 하늘의 뜻이라 부끄러울 게 없다
오히려 옷소매에 피는 보푸라기 꽃이 아름다워
오늘도 꽃밭 사이에 서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가끔은 두렵고 고개가 저어지기도 하지만
왜? 하고 되돌아보기도 하지만
결국 내 앞의 풍경을 사랑하는
나에게 지고 만다
기어이 일어서는 나에게 밀리고 만다
누가 이기든 지든 면류관을 나에게 돌리는 그대
수경아, 아침이다 들길로 나가자
사람들은 사람들이고 나는 나다
내가 가는 길을 나는 간다*
보푸라기 꽃 발길 옮길 때마다 향기 피워 올리고
눈썹처럼 떨리는 꽃잎들 제 몸을 안은 채 걸어가면
길은 만방으로 퍼져 나발을 분다
꽃 속의 숨어 있는 꽃 보푸라기 꽃
오늘도 따뜻한 향기 소매 끝에 흔들리누나
* 니시다 기타로〔西田畿多郞〕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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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면서 나에게 맞서는 것은 나이고, 꽃 속에 숨어 있는 것도 꽃 스스로이다…라고 성찰하는 시인은 그러면서 세상을 껴안고 간다. 따뜻한 향기 소매 끝에 흔들리는 ‘오늘’은 또 어떤 축복일까. 박철 시인은 1987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했고 제 12회 백석 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