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의 숲
이상협
불탄 목적지는 이해하기 쉽고 나는
도착하는 길이 계절마다 다릅니다
구운 흙은 울기 좋습니다
깨어질 듯 그러했습니다
밖에 누가 있나요
안에 누구 없습니다
나는 나의 작은 균열을 찾는 중입니다
금 간 서쪽 무늬를 엽니다
나는 획의 기울기를 읽는 데 온밤을 씁니다
중심은 맺혔다 사라집니다
나는 안팎이 없습니다
검은 모자 떼가 날아갑니다
불쏘시개로 흰 뼈를 깨뜨리고
경계에서 나는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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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백자의 숲’이라고 해서 또 식상한 서정시의 늘어진 타령을 보나했는데 웬걸, 시인은 백자의 선과 결에서 스스로를 깨트리고 팽팽하게 솟구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나의 항아리를 빚는 사람이 온 자신을 바쳐서 구워내고도 한가지 흠결에도 참지 못하듯 시인의 문장도 또한 자신을 부수고 새 살 돋듯 바깥으로 나오고 있다. 이상협 시인은 아나운서이기도 하고 시인이기도 하다. 시집으로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