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저울 – 이재무

무중력 저울

이재무

 

그는 달고 재는 일로 세상이치 궁구하던 자

꼼꼼하게 저를 다녀가는 세세한 차이들

눈금으로 읽어내 존재들 가치를 증명해 왔다

슬쩍 바람이 몸 얹기만 해도

파르르 진저리 치며 파동 보이던,

바늘 촉수를 누구라서 감히 눈속임할 수 있었겠는가

경중에 따라 위계 매겨온 냉혈한

무게들은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해 왔다

그렇게 평생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로 살아온 그가

어느 날 문득 중심축 잃고 난 뒤

기관들 신경 줄 끊어지고 감각들은 몸을 빠져 나갔다

이후 그는 자신이 지금껏 애써 지켜온

추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스스로 부인하였다

생의 위반과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무게의 차이는 가치의 서열일 수 없으므로

기능 상실한 추를 떼어낼 것

세계 안에 편재하는 사물은 각자 저마다의 무게로

고유한 최대치의 절대성을 지녀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 무게의 이력들을 더 이상 개관하지 말 것

그리하여 그렇게나 많이 주렁주렁 길고

무거운 전력 담은 벽보와 전단지 인생들이 발길

끊어지고 철저히 버려진 채 그른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추수

끝난 벌판의 검불처럼 속진의 셈본으로부터

벗어나 생애 처음으로 무려한 자유가 주어졌다

-평생 저울질만하고 살다가 문득 해탈의 경지로 접어든 시인이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생의 위반일까 생의 반전일까. 무너진 후에 얻는 자유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재무 시인은 1983년 무크지 ‘삶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