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왔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 날 몇 밤을 지나서.
이쯤은 꽃도 나무도 낯이 설겠지,
새소리도 짐승 울음소리도 귀에 설겠지,
짐을 풀고
찾아 들어간 집이 너무 낯익어,
마주치는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크게 다르랴,
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웅다웅 싸우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매화꽃 피고 지기 어언 십 년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기껏 떠났던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까.
아니 당초 집을 떠난 일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시,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나는 집을 나온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 날 몇 밤을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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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동구 밖을 떠나온 것도 아니고 아예 바다를 건너 버린 사람들은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데까지가고자 한다.’ 집을 나와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까지 또 얼마나 걸렸을까. 사람 사는 곳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래서 더 먼 데까지 가자고 시인은 자꾸 집을 나온다. 시인은 가고 싶은 곳은 혹시 피안 너머가 아닐까… ‘갈대’, ‘목계장터’ 등의 애송시로 사랑 받는 신경림 시인의 시 한편 슬쩍 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