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를 줍는, 저 사람
정끝별
툭 툭 가을 깊이 못질을 하듯 도토리가
버릴 거 다 버린 상수리 숲에 쌓이면
체머리 흔들며 누가 이 숲에 와
저토록 헐벗은 잎새와 가지를 흔들고 가는가
덩쿨을 치워도 다시 가지에 치이며
도토리를 줍는, 앙당한 저 사람
하루내 허리 접어 짧은 보폭으로
주름진 흰 목 늘어뜨린 채
주워도 주워도 채워지지 않는다고
바싹 마른 껍질 속 떫기만한 세월이라고
몇 점 도토리 묵으로 흐물대다 처지는
몇 끼 소찬을 위한 썰렁한 응어리
구시렁 구시렁 뱃속 누런 밥처럼 밀려가고
떨어지지 않는 것 없는 가을 숲
늙은 상수리 나무, 저 사람
희고 먼 내 뼛 속의 얼굴이라면
내 바닥은 앉은뱅이 잡풀
얼마나 더 멀리까지 욕되게 떨어져야
서늘한 고향땅 흙내음에 닿을까
언제나 정끝별 시인의 작품이 그렇듯이 이 시에서도 나와 닿아있는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존재가 각별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도토리 하나가 땅에 떨어지며 우주의 존재를 숙연하게 만든다. 흙에서 시작되어 흙에 묻히니 어디 고향이 따로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