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 최금진

데칼코마니

-새장-

최금진

나는 거울을 내려놓는다

당신은 털 빠진 목을 내밀어 새장 밖을 내다본다

손을 넣어 당신의 긴 머리카락을 벗겨준다

깃털이 졸음처럼 쏟아져내린다

나는 당신과 닮은 새 한 마리를 풀어 놓는다

잠에서 깬 당신은 잠에서 깬 자신을 볼 것이다

지워진 화장을 고치며

저렇게 우울한 새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중얼거리며

거울을 볼 것이다

만져지지 않는 뒷모습

당신의 따끈한 해골을 꺼내고 깨진 알 껍질을 넣어준다

당신은 둥근 알 껍질을 뒤집어 쓰고 웃는다

거울이 당신을 찬찬히 흝어본다

상하좌우의 딱딱한 표정

우두커니 콩알을 쪼아대는 한 쌍의 허무가

다 늦은 저녁을 물고 거울 속으로 날아간다

나는 텅빈 새장을 들고 시장에 간다

당신은 이빠진 빗을 들고 희고 긴 머리카락을 빗는다

 

데칼코마니란 종이위에 그림물감을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겹쳐서 대칭적 무늬를 만드는 미술기법이다. 그러니까 새장 밖의 나와 새장 안의 당신은 사실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꿈에서 처럼 유체이탈하여 내가 당신이 되고 또 새가 된다. 그 광경을 기억하여 묘사해보면 한 장의 그림이 된다. 사실 시인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시는 어렵다. 그래서 자꾸 읽게만든다. 최금진 시인은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2001년 ‘창작과 비평’ 시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