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윤성학

 

데미안

                                                  윤성학

시간은 알을 깨고 나온다

가스레인지 모서리에 계란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을 깨 밖으로 나옸다

시간은 자신이 낳은 알을 쪼고 있었다

琢琢

계란이 가장 맛있는 프라이로 되는 시간은 2분이며

세상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이분법이지

헷세가 탁자 위에 계란을 돌리며 말했다

돌던 계란을 잡았다가 놓았을 때

그대로 탁, 멈추면 삶은 알

먼추는 듯 다시 돌기 사작하면 날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가 슬픈 것은 관성 때문이었어

헤, 헷, 헷세;가 말을 더듬었던 것도 같은데

관성이 삶에 작용한다는 것은

그 삶이 삶겨지지 않은 까닭이므로

젊은 시인이 슬픈 것은

관성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가진 계란은 죽었니 살았니 묻는 이분법

어느 날부턴가 누군가 묻지 않아도

그 물음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시인이 슬픈 것은 관성 때문이 아니라 이분법 때문이라는 시인이 ‘농심’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잠시 걸렸었다.  촛불시민을 무시한 농심과 시인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 지 따져보는 것은 관성인가? 아니면 이분법인가? 계란에서 헷세와 베르테르를 꼬여내는 시인에게, 죽었니 살았니 묻는 것은 제 자신이 아닐까. 윤성학 시인은2002년 ‘문화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랑권 전성시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