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장미

 

넝쿨장미

 

김해자

 

너를 기다리다 동글동글 뭉쳐놓은

주먹밥 같은 하얀 넝쿨 장미 본다

의료보험증 들고 상처 동여맨

종주먹 같은 붉은 넝쿨 장미 본다

미싱사 십오년에 의료보험도 안되는

마찌고바 지하공장 드륵드륵 미싱 소리 듣다

누런 가시 바짝 세우고 철조망 기어오르는 너를 본다

회충약 털어넣은 것처럼 자꾸 어지러워,

갑작스레 쏟아지는 햇빛에 찡그리며

웃는 너를 본다

 

이 땅에 여자로 산다는 것

저리 하얀 눈물 방울방울 꽃 피우는 것이야

이 땅에 가난한 여자로 산다는 것

저리 붉은 상처 종주먹으로 꽃 틔우는 것이야

제 한몸 못 가누어 담벼락에 기대는 거 아냐

땅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야

봐, 올라서잖아 아무도 모르게

담벼락 넘어 하얀 송이 피워올리잖아

봐, 저렇게 넘어서잖아 한눈 파는 사이

철조망 넘어 붉은 송이 밀어올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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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공업화 현장에서나 있을 법한 미싱사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21세기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아직도 어느 여성 웹싸이트 속풀이방에 가면 아이들은 어리고 본인이 버는 돈은 렌트도 안돼는데 남편은 게임만 하고 당장 어쩌지요…라는 글이 올라온다. 넝쿨장미가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워올리는 걸 보면서 시인은 세상의 힘 겨운 여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부끄럽지 않는가…라고 하는 것 같다. 김해자 시인은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무화과는 없다’, ‘축제’ 가 있다.